예술과 사랑, 자유를 추구한 기인(奇人)) 황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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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사랑, 자유를 추구한 기인(奇人)) 황진이
  • 입력 : 2020. 10.15(목) 10:30
  • 대한여성일보
[대한여성일보 = 대한여성일보]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소설로, 혹은 영화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지만, 이 가운데서 황진이 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인물도 흔치는 않다는 것이다. 소설로 드라마로 영화로 유행가가사로 수차례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여성은 일찍이 없었다. 그녀는 역사상 최고의 미모와 재능, 그리고 도전정신으로도 충만했던 여성이었다. 신사임당이 황진이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아님에도 신사임당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은 거의 없는 반면 황진이는 매력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세대를 달리하면서 늘 새로운 여인상을 만들어냈다. 20세기 이후 남북한을 통틀어 그녀만큼 사랑받은 인물이 있었을까. 황진이는 아버지 황진사와 소실인 기생과의 사이에 출생했다.
어느 날 과거공부를 하던 양반자제가 황진이를 본 후 짝사랑 하게 되어 상사병에 들어 야위어가다가 결국에 죽게 된다.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 갈 때 움직이지 않았다. 황진이가 나와서 저고리와 치마를 풀고 상여 앞에 가서 두 번 절하면서 원혼을 푸시고 저승길로 떠나시라고 말하자 상여가 움직이기 시작 했다. 황진이는 자신 때문에 한 남자가 죽었으므로 기생이 되어 짐을 풀겠다고 결심하고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이별을 고하고 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월이라는 이름을 기적에 올렸다. 세속에 억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였다. 황진이는 미모가 수려하고 거문고와 시. 서 .화에 능했다. 그는 살아생전 그는 좋아하는 남자를 골라 농락했으며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느 날 황진이가 27세에 당시 도학군자로 이름을 날렸던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기 위해서 서화담의 집에 찾아갔다. 서화담이 “황진이구나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물으니 글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왔다고 말하며 제자로 받아준다면 스승으로 모시고 끼니도 대접하고 거문고도 켜주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애원했다. 황진이는 책을 읽으며 주야로 서경덕을 유혹할 기회를 노렸다. 어느날 서화담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예쁘게 단장하고 가랭이를 보이고 잠을 자는 척하였다. 화담이 집에 돌아와 황진이의 자태를 보았지만 “잠버릇 한번 사납구먼” 하면서 깨우지 않고 이불을 덮어주고 다른 방에 건너가 잠을 잤다. 다음날 황진이가 서화담에게 자신이 잘못했으니 오늘부터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하면서 그를 한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틈 있는 데로 찾아와 배우겠다고 하였다. 그 후 그는 종종 찾아와 가르침을 받았으며 영원한 스승과 제자로 남았다. 그 때 황진이는 개성에는 꺽을 수 없는 것이 3개가 있는데 바로 “ 서화담. 황진이. 박연포를 송도의3절“이라 하였다.
황진이는 사대부의 허물만 벗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여성은 아니었다. 선전관이었던 이사종을 사랑하여 6년간 전국을 유람하였다. 한양제일의 소리꾼이라는 이사종과 황진이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두 사람은 거칠 것 없이 송도를 떠나 조선팔도를 유람하며 한양과 송도에서 남 녀 간의 사랑을 초월한 예술동지이자 영혼의 동반자로 인생을 함께 나눴다. 연인과의 사랑을 바탕으로 시를 지을 때면 조선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그녀가 이사종과 열정적인 사랑을 읊은 ‘동지섯달 기나긴 밤’은 오늘날까지도 예송되는 옛시조이다.
동지섯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신분은 비록 미천한 기녀였지만 학식과 예술성 갖춘데다가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도 가졌기에 선비들과 대등하게 사귈 수 있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음욕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시와 음악과 자연을 매개로 사귐을 맺었다. 그래서 그 사귐은 격조가 있었다. 그녀가 중년기에 들어 죽음을 맞았지만 범인들이 천년동안이나 누릴 낙과 멋을 다 누리고 갔다고 할 것이다. 선비들과 어울려 금강산을 비롯한 산천을 감상하며, 조선시대 여성으로 남다른 삶을 살았다. 조선의 선비· 시인· 묵객· 풍류객들은 황진이와 함께 술을 마시며 하룻밤 지세우기를 원할 정도로 조선을 대표하는 명기였다. 황진이는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남아 영원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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